정보의 연결망 속에서 인류를 바라보다
역사는 단절의 연속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연결의 실타래로 엮여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최신작 『넥서스(Nexus)』에서 이 연결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석기시대부터 현대의 인공지능 사회까지, 인류가 어떻게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그 과정 속에서 사회와 문명이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그간 하라리가 쌓아온 지적 여정을 집대성한 듯한 느낌을 준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기원을, 『호모 데우스』가 미래의 인간상을 조망했다면, 『넥서스』는 그 중간의 유기적 연결 구조를 ‘정보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풀어낸다. 특히 현재 우리가 직면한 AI 시대의 도래를 정보 흐름의 변곡점으로 분석하는 시선이 날카롭다.
정보는 어떻게 힘이 되었는가
책은 정보가 단지 기록의 도구였던 시대에서, 점차 권력과 통제의 수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구석기 시대 부족 간의 신호 체계, 문자의 발명, 인쇄 기술의 혁신, 통신 기술의 발달에 이르기까지—각 시대의 정보 체계는 그 사회의 구조와 권력 분배를 결정지었다.
하라리는 정보가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이동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권한도 함께 변화했다고 말한다. 왕이든, 교황이든, 대통령이든 정보를 독점하는 자가 역사를 움직여왔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는 더 이상 일부만의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전환을 “네트워크화된 힘의 분산”이라 칭한다. 즉, 정보는 더 이상 위계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AI, 인간 네트워크의 마지막 진화인가?
『넥서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인공지능과의 연결이다. 하라리는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정보 처리의 주체로 본다. 인간이 정보를 인식하고 가공하던 방식이 AI에게 위임되는 순간, 인간은 정보 흐름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그는 경고한다. “AI는 인간의 정보 주권을 해체하고, 우리가 정의하던 ‘자아’조차 재구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문명의 구조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정보의 주체가 인간에서 비인간(기계)으로 이동할 경우, 민주주의, 윤리, 사회적 신뢰라는 시스템은 심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하라리는 이를 새로운 ‘정보 생태계의 진화’라 본다. AI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인간 행동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능력을 갖는다. 이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넥서스’로 이어진 인간의 진화사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방대한 인류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인간 개인의 감각과 감정까지 포착해낸다는 점이다. 하라리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변화가 인간의 관계, 감정, 사회적 신뢰, 공동체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인류가 언어 이전에도 ‘연결망’을 형성했으며, 그것이 협력과 집단 생존의 기반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를 ‘생물학적 넥서스’라 명명하며, 인간의 진화는 곧 연결의 진화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연결은 결국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그 연결은 자율적인가, 강제적인가?”, “우리는 연결을 통해 자유를 얻고 있는가, 아니면 통제를 강화당하고 있는가?”
연결된 세상에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넥서스』는 단순한 역사서도, 기술서도 아니다. 오히려 독자 스스로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네트워크 안에 놓여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거울 같은 책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은, 오늘 우리가 취할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의 모든 연결이 새롭게 느껴진다. 인터넷, SNS, 뉴스, 빅데이터, 알고리즘… 모든 정보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노드(node)로 존재하고 있는가? 정보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