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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독후감 리뷰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독후감


사과 하나가 반으로 나뉘어 있다. 왼편은 흐릿한 초록빛, 오른편은 윤기 나는 붉은 사과. 이미지 한 장에 담긴 이 이중성은 곧 이 책,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의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현실과 환상,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결들을 담은 이 소설집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혼모노
혼모노

책 제목인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단어가 가지는 이중적인 맥락은 단순한 참과 거짓의 구분을 넘어선다. 누군가는 진심이었으나, 타인에게는 기만일 수 있고, 어떤 믿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짓이 될 수 있다. 성해나는 이 애매하고 불안정한 경계선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경계는 때로 사랑이고, 때로는 집착이며, 또 어떤 순간에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외침이 되기도 한다.

소설집 속 각각의 이야기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치 압축된 감정의 정수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이 날을 세운 채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판다. ‘나는 진짜인가’, ‘내가 믿은 것은 진짜였는가’, ‘사랑은 진짜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이야기의 결을 따라 촘촘히 흘러간다. 특히 이 책이 젊은 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유는 단순한 문학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라, 이 시대 청춘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깊고 예리하게 통찰한 데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 한켠이 쓸쓸하게 저린다. 그것은 이 소설들이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에 감춰진 내밀한 진심을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진짜가 되고 싶다’는 절실함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진짜란 무엇인가? 타인의 시선에서, SNS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진짜’로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해나는 이 물음을 극단적이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혼모노』는 단순히 “혼모노(진짜)”가 되려는 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관계가 ‘페이크’와 ‘리얼’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을 꾸미고, 때론 거짓 안에서 더 진실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모든 모순 속에서도 사랑하고, 외로워하고, 살아간다.

성해나의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감각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예리하다. 감정의 잔상을 남기며, 독자의 무의식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녀는 말로 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포착해낸다. 그래서 읽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꼭 말하고 싶지만,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고백처럼.

『혼모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작은 거울이 되어준다. 진짜가 되고 싶은 마음, 진짜를 믿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안에서 무너지고 마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담긴 이 소설집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전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혼모노가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어쩌면 평생을 가짜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진짜를 사랑했고, 또 어떤 이는 그 가짜 속에서 진짜를 발견했을 것이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그런 진실의 조각들을 담은, 아름답고도 쓸쓸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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