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조용한 소설이다. 외침 없이 속삭이며, 격렬한 반전 없이 묵직하게 스며든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울리는 진동은 삶의 가장 깊은 진실에 닿는다. 격렬한 운명의 회오리보다 더 강력한 울림, 그것이 바로 『스토너』가 선사하는 감정이다.
책 표지에 그려진 반쯤 해체된 듯한 얼굴은 이 소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정체를 잃고, 모순에 갇히며, 그러나 자신만의 존재를 지켜내려 애쓰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한다. 스토너는 누구인가? 그는 영웅도, 반영웅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 한 시대를 살아낸 한 남자.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삶에서, 자신을 본다.
평범함의 비범함
스토너는 미국 중서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다. 부모의 기대에 따라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만, 어느 수업에서 문학을 만나는 순간, 그의 삶은 조용히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농업이 아닌 문학을 선택하고, 교수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의 인생에 찬란한 성공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평생 소외당하고, 무시받고, 가족 안에서조차 외로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묵묵히 걷는다. 이 책은 화려한 인생 역전이나 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단단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존 윌리엄스는 이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든다. 그 누구의 영웅도 아니었던 스토너는, 삶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 단단한 내면이야말로, 이 소설이 말하는 진짜 ‘존엄’이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
스토너의 인생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길을 택했는가? 이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 그는 질문을 크게 외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견디며 그 물음을 품는다.
결혼 생활은 실패하고, 자식과의 관계도 소원하며,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문학과 진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정직함으로 삶을 살아낸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스토너에게서 위로받는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특별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하루하루,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듯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고요한 열정. 그것이 곧, 우리의 인생이니까.
삶의 마지막, 그리고 빛
소설의 마지막에서 스토너는 병상에 누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후회도, 회한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끝내 잊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한 권의 책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의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스토너』는 외롭고 고요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삶이다. 그 삶은 조용히 흘러가지만, 독자의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한 줄의 다짐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나답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