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길 위의 뇌 – 정세희

뇌는 달릴 수 있다 – 『길 위의 뇌』를 읽고

정세회 저자의 『길 위의 뇌』는 단순한 건강 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뇌를 다루는 의사의 일상과, 그가 ‘길 위에서’ 직접 몸으로 터득한 사유와 통찰의 기록이다. 이 책의 제목은 묘하게 시적이면서도 실천적이다. ‘길 위의 뇌’라니. 단어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뇌를 위한 책은 흔하지만, 이토록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끝까지 이어지는 연결의 지점을 그려낸 책은 드물다.

길 위의 뇌

저자는 20년간 뇌를 진료해온 의사이자, 꾸준히 달려온 러너이다. 이 두 정체성은 그의 글에서 놀라운 조화를 이룬다. 병원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뇌를 바라보며 쌓은 과학적 통찰은, 땀이 맺힌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며 시작된 새벽 러닝의 감각과 뒤섞인다. 그렇게 해서 그는 말한다. “길 위에서 꾸준히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건강한 뇌와 몸을 지켜줄 수 있다”고.

책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뇌졸중을 막기 위한 운동의 중요성, 치매를 예방하는 걷기의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는 ‘꾸준함’의 위대함.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건강 팁이나 의학적 조언을 늘어놓는 데 그쳤다면, 이토록 오래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길 위의 뇌』는 결국 우리 삶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어떤 속도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묵상이 담긴 에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러닝을 통해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다.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뇌의 이야기라고 하면, 흔히 우리는 복잡한 뇌과학 이론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놀랄 만큼 따뜻하고 단순하다. 뇌는 결국 ‘움직임을 통해 살아난다’는 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매일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신적 건강’을 말하면서도, 결코 정신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정신을 일으키고, 일상의 반복을 통해 뇌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저자의 문장은 의사의 처방전처럼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친구처럼 따뜻하다. 그의 말은 과학으로 증명된 확신에서 출발하되, 결국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심으로 도착한다.

책의 표지처럼, 여러 겹의 초록빛이 쌓여 있는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하루하루 걸어가는 길, 꾸준히 이어지는 생의 결처럼 보인다. 각기 다른 색조의 녹색은 기분, 날씨, 체력, 감정의 굴곡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꿰뚫는 공통된 선은 하나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다.

우리는 종종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무관심’이 더 큰 적일지도 모른다. 뇌는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느려지고, 관계는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며, 삶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텅 비어간다. 『길 위의 뇌』는 그래서 말한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오늘도 걷고, 달리고, 살아가라”고.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문득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 들었다. 내일 아침은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조금 더 긴 길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뇌를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 삶 전체를 더 단단하게 다듬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